▪ 지난 8월, Ed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에게 6개월간 레슨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친구입니다.
머리 올리던 날 108타를 치고, 4개월 만에 안정적인 90타를 치기 시작했었지요.
미국에서의 유학 1년 동안 골프채를 잡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미국유학이라면 유학1년 차는 원래가 많이 바쁩니다.
그런데 방학이라 한국에 잠시 들어와서
아버지랑 같이 1년 만에 라운드를 나갔는데 91타를 쳤다고 하더군요.
우연이려니 했는데 그 다음날 또 91타를 쳐서 참 신기했다고 합니다.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 몇 개 없더라구요…
그것만 다시 연습했더니 그냥 공이 맞던데요….”
휘두르고, 돌리고, 버티고…
▪ 여의도 금융가에서 근무하시는 최부장님
지난 9월부터 1주일에 1~2회씩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늘 하던 대로 첫번째 시간에는 퍼팅을 같이 연습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
수요일 저녁에 직장에서 가까운 스크린골프장으로 갔습니다.
처음 10분간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칭
그리고 스크린골프장에 있던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습니다.
다시 10분간 그립 잡는 법 연습
그리고 나서 야구스윙을 해보라고 시켰습니다.
최부장님은 별 생각 없이 드라이버를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깨 높이로 직구가 날아오네요. 휘두르세요….”
“그렇게 쳐 가지고는 홈런이 안 나올 것 같은데요, 바람소리를 휙~하고 내보세요.”
“좋습니다. 이제 허리높이로 공이 날아오는데요. 휘두르세요... 휙~”
“자 이제 무릎높이로 공이 날아 올 거예요, 엉덩이를 조금 뒤로 빼면 상체를 숙이기가 쉬워요….
그렇게 약간 숙인 상태에서 휘두르세요… 휙~”
“지금 한국시리즈중인데 작전이 걸렸어요, 히트앤드런.
그런데 공이 원바운드성으로 아주 낮게 들어오고 있어요… 휘두르세요.. 휙~”
남자분들에게 야구스윙을 시키면
누구라도 금방 어깨를 돌려서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바람소리를 내면서~
그 와중에 임팩트 이후에 왼손이 돌아가면서 오른손이 왼손을 타고 위로 올라오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릴리즈입니다.
슬라이스를 없애고, 공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동작입니다.
최부장님은 레슨시작 30분 만에 릴리즈가 있는 스윙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부장님 이제는 휘두르고 나서 허리를 돌리세요…”
“왼쪽허리를 당기세요, 아니면 오른쪽 허리를 밀든지….
왼다리가 펴지고, 배꼽이 목표방향을 향할 때까지 허리를 돌리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두 다리가 붙으면서 오른쪽 발끝으로 서 있게 되요….”
허리를 돌리다 보니 가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립니다.
“최부장님, 휘두르고 돌리고 나면, 멈춰선 자세로 3초간 버티세요…”
“자, 휘두르고, 돌리고, 버티고…. 잘 했습니다.”
“다시 휘두르고, 돌리고, 버티고… 잘 했습니다.” 이 말만 20번도 더 반복한 것 같습니다.
제법 스윙의 모양이 나오길래,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고무티 근처로 클럽헤드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세요…..?”
“지금부터는 휘두르고, 돌리고, 버티고 하면서 클럽헤드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세요….. 휙~”
“잘 보인다니 다행이네요….”
휘두르는 스윙은 임팩트 이후에 헤드가 제일 먼저 앞으로 튀어나갑니다.
힘이 잔뜩 들어가 어깨부터 돌아가는 스윙과 비교하여 어깨가 많이 열려 있지는 않습니다.
어깨가 먼저 돌아가기 시작하면
임팩트 순간에 이미 어깨가 많이 열려있게 되고
그 순간 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개도 같이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니 클럽헤드가 지나가는 길을 보고 있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헤드업이죠….
스윙의 모양도 좋고, 바람소리도 좋고, 균형도 잘 잡혀있고, 클럽헤드도 보인다고 하길래
공을 올려 놓고 한번 쳐보라고 했습니다.
레슨 시작한지 50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공 없이 연습스윙을 시작한지 30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휘두르고, 돌리고, 버티는’ 연습스윙을 두 번 더 하고
그 리듬 그대로 공을 쳐보게 했습니다.
딱! 힘차게 출발한 공이 예쁘게 왼쪽으로 휘면서 날아갔습니다.
스크린에는 200m가 날아갔다고 표시가 되더군요.
흥분한 제가 그 첫번째 샷을 카메라로 찍으면서 호들갑을 뜨는 동안
본인은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뭐 상관없습니다. 왕초보 레슨은 원래가 그렇습니다.
그 다음 시간에 다시 스크린골프에서 만났습니다.
두 번째 레슨에 드라이버들고 200m쳤다고 하니 친구들이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뭐 상관없습니다. 왕초보 레슨이 원래가 그렇습니다.
다시 드라이버 들고, 휘두르고, 돌리고, 버티고.... 를 한 시간 연습했습니다.
연습스윙 두번 하고, 공을 한번 치는 방식으로….
“2보1배”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루틴연습이죠….
연습스윙 두 번으로 몸과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그 느낌 그대로 공을 쳐내는…..
단 두 시간의 연습으로 최부장님은 꽤 좋은 드라이버 스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두 시간 동안 제가 최부장님께 가르쳐 드린 것은 5마디 밖에 없더군요…
“휘두르고, 돌리고, 버티고, 지나가는 것 보고, 2보1배….”
저 이력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레슨을 받으면 수학공식이나 컴퓨터프로그램 같은
정교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골프, 뭐 그렇게 어렵게 배울 필요 있을까요….
오랜만에 골프를 하거나, 스윙의 감을 잃었다는 느낌이 올 때라면
간단하게 배워 둔 것이 오히려 약이 되기도 합니다.
▪ 드라이버 꽃이 피었습니다.
2번의 레슨으로 드라이버 스윙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길래
세 번째 레슨에서는 드라이버를 골라 주었습니다.
400야드짜리 드라이빙레인지로 제가 가지고 있던 12개의 드라이버를 들고 나갔습니다.
골프가방에 드라이버만 12개를 꽂고 보니, 한 송이 꽃처럼 보이더군요.
꽃잎 하나 하나를 따듯이, 드라이버 하나씩 건네 주면서 쳐보게 했습니다.
날아가는 공의 구질은 제가 점검을 하고, 본인은 느낌이 어떤지 말해보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드라이버의 느낌이 무엇인지 말을 잘 못하시더군요….
최부장님은 30대 후반으로 아직 미혼이고, 요즘 선을 자주 보러 나가십니다.
“나에게 맞는 드라이버를 고르는 과정은 평생 배필을 구하는 것 하고 같습니다.
맞선 보신 여자분이라고 생각하고, 드라이버의 느낌을 말씀해 주세요…”
갑자기 드라이버 하나 하나에 대한 느낌을 굉장히 자세하게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기는 한데, 성격이 너무 딱딱한 것 같다…
두 번 만나 볼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느낌이 좋아서 나중에 다시 한번 쳐보고 싶다…..
그렇게 1시간 동안 12개의 드라이버를 돌아가면서 쳐 보고 나서
6개를 고르고, 3개를 고르고, 최종적으로 하나의 드라이버를 골랐습니다.
최부장님은 이제 골프에 입문하신 분이라
어떤 드라이버가 어떤 드라이버인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그냥 한 시간 동안 12개의 드라이버를 쳐보고 나서
가장 성과가 좋고, 가장 자신의 느낌에 맞는 드라이버를 고르셨을 뿐입니다.
다행이 일본계열제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드라이버 중 하나를 고르셨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2008년 모델이 아니라 2007년 모델을 골랐다는 것이고….
골프를 하시는 분들과 클럽피팅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눕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피팅의 과정은
기계적으로 측정된 숫자들을 기준으로
새로운 샤프트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많이 진행이 되지요
가끔은 또 다른 방식의 피팅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냥 시중에 나와있는 12개의 드라이버를 들고 쳐보면서
브랜드를 정하고, 샤프트의 강도를 정하고, 로프트를 정하고
다시 2주 정도 연습장에서, 실전에서 쳐보고 나와 같이 할 배필을 결정하는…..
▪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최부장님이 골프를 시작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드라이버를 날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변의 친구들이 계속 필드를 나가자고 유혹한다고 그러시더군요…..
알고 보니 꽤 구력이 있고, 실력이 있고, 그래서 내기를 조금 크게 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일단 못 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저와 같이 스크린골프에서 라운드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의 룰을 익히고, 골프코스와 코스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익숙하게 만들어 주기 위함입니다.
특히 스윙의 템포와 리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까지는 골프선생님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부장님은 특별히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매샷 칠 때 마다, 한타에 만원씩 내기를 한다면 어떻게 내기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그 과정을 집요하리만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돈이 오가는 것은 아닙니다…)
최부장님이 앞으로 만나게 될 골프환경이 그런 것이라면
더 지독한 상황을 만들어서 훈련시킨 다음에 내 보내고 싶어서입니다.
그렇게 최부장님의 머리올리기 준비는 남들하고 조금 다른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내기골프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최부장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필요한 준비이기에 그것도 재미있습니다.
“Everything that has a beginning has an ending.”
영화 매트릭스의 한 구절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의미겠지요…
2년 전 어느 날, 골프스카이를 만났습니다.
‘레슨혁명’이라는 코너명으로 50편의 칼럼을 쓰기로 약속했었습니다.
‘레슨무용론’이라는 글로 처음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50편째의 글을 보냅니다.
50번째의 글을 멋있게 장식하고 싶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수준의 글이 아니라서 죄송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단 귀국하고 처음 한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합니다.
정서희님, 게으른 작가에게 글 독촉하시느라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될지, 저도 궁금하네요…..
때로는 마음 설레는 미래가 있어서 오늘이 행복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항상 즐거운 라운드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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