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기업을 운영하는 김 사장은 1년 전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치곤 골프가 조금 늦은 편이다.
30대 때는 굳이 골프를 배우지 않아도 사업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고,
마흔 줄에 접어들면서 골프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때는 사업이 어려워져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수년간 집에도 잘 들어가지 못하고 일에만 몰두한 덕분에
드디어 사업은 다시 정상 궤도를 되찾았다.
이제는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무엇보다 사업을 좀 더 키우려면 골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원래 결심이 서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김 사장인지라 그 날로 골프 연습장에 등록했다.
레슨 프로의 지도를 받으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똑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지겹기도 했지만
기본기가 충실해야 한다는 프로의 말에 그 시간들을 참아냈다.
3개월쯤 지나자 어느 정도 기본기가 갖춰졌다.
스윙에 자신이 좀 붙으니 연습장이 아닌 골프장에서
공을 쳐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런 김 사장의 마음을 읽었는지 친구가 호기롭게 머리를 얹어주겠다고 나섰다.
드디어 D-day.
하늘은 맑고 바람은 잔잔했다.
골프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순간이 다가왔다.
김 사장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티 그라운드에 섰다.
일행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고독이 밀려왔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첫 샷!
연습장에서 수 없이 반복했던 스윙이지만 왠지 낯설었다.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힘차게 스윙을 했다.
따악 하고 제대로 볼이 맞은 듯한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못해도 최소 200야드는 날아갔으리라 생각했던 공은
고작 50야드쯤 날아간 뒤 힘없이 떨어졌다.
그나마 오비 지역으로 빠지지 않고 페어웨이에 떨어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이었다.
유명한 전직 프로야구투수 박 모 선수도
3만 관중이 지켜보는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 3볼 상황에서
공을 던질 때도 떨리지 않았는데,
3명이 지켜보는 골프를 할 때는 대단히 떨렸다고 한다.
그만큼 스윙을 할 때는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긴장하게 되어있다.
일행은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다면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김 사장은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첫 샷이 엉망이 된 것이 속상하고, 다름 사람들 보기에도 창피했다.
첫 샷이 그날의 경기를 좌우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상하게 실수를 만회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공은 더욱 안 맞았고,
김 사장은 평정을 잃었다.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그였다.
아무리 첫 라운드지만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속이 상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클럽을 내던지기도 하고
입에서 거친 말도 튀어나왔다.
라운드를 끝낸 후 일행과 가볍게 맥주 한잔 할 때도
기분이 전혀 풀리지 않아 내내 인상을 구기고 앉아 있었다.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실력을 갈고 닦아
다음에는 꼭 오늘의 오명을 벗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후 한 달여 동안 맹연습을 한 김 사장은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전화를 했다.
"다들 지난번 모였다 00골프장에서 보자. 이번에는 내가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마"
피나는 연습을 한 덕분인지 두 번째는 처음보다 잘 풀렸다.
하지만 지난번과 똑 같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데도
매번 다른 상황이 연출되었고,
의도한 대로 공이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마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공의 방향에 따라
김 사장의 얼굴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친구들은 한 달 전에 비해 실력이 일취월장 했다고
추켜세웠지만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친구들을 이겨 보겠다는 마음에 가끔은 규칙을 어기고,
공이 빗맞으면 벌타 없이 한 번 더 치게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친구들이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경기를 즐기라고 충고를 했지만
한번 달아오른 승부욕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골프도 끝났다.
김사장은 또다시 맹연습을 돌입했고
2주가 지나 후 친구들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다들 썩 내키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왜 그러느냐고 꼬치꼬치 캐묻자 한 친구가 비수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야, 너처럼 매너 없이 승부에만 집착하는 사람과 누가 골프를 같이 하고 싶겠냐?
그나마 친구들이니 망정이지, 너 비즈니스 때문에 만난 사람들과 그렇게 경기하면
거래 끊긴다. 골프 실력 키우기 전에 매너부터 배워 임마~"
이것은 비단 김 사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골프 인구가 늘어나면서 골프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은 많아 졌지만,
정작 골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매너를 알려주는 곳은 없기 때문에
김 사장처럼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매너 없는 골퍼로 전략하는 경우가 많다.
매너 없는 골퍼와 함께하는 골프는
재미가 없고, 불쾌감을 참느라 스트레스만 쌓인다.
그러니 매너를 갖추지 않으면 아무리 골프 실력이 뛰어나도
환영 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