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퍼팅?
얼마 전 최경주와 타이거의 매치플레이 시합을 보고,
세계 1위와 8위는 역시 ‘퍼팅 차이’… 라는 걸 느꼈다.
이제 우리 국산 탱크도 세계 일류이다.
이번 시합 후 세계 6위로 승차하여 완벽한 top-10으로 인정받았지만,
‘황제 퍼팅’ 에 비교하면 아직 2%가 부족한 듯하다.
황제의 퍼팅은 단순한 ‘구멍 넣기’의 경지를 벗어난 듯하다.
굶주린 호랑이가 먹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듯, 그린과 홀 주변을 왔다 갔다 한다.
온몸에 전해오는 짜릿한 기운을 즐기며 홀을 압도하는 기세를 서서히 잡아간다.
공 뒤에서 먹이의 약점을 다시 한번 더 신중히 관찰을 한 다음,
공격방향을 결정하고는 레이져가 나오는 안광을 쏘아
먹이를 일단 주눅이 들게 만든 다음,
먹이의 사지가 조금 풀렸다 싶을 때
전광석화처럼 날라가 단번에 급소를 무는 모습…
한마디로 ‘예술!...’이다.
이 걸작품을 같이 한참 감상하다가,
‘대체 어떤 퍼터를 쓰고, 그립은 어떻게 하길래
저런 귀신 같은 퍼팅을 구사하는지…’
한 친구가 분위기 깨는 우문을 한다.
물론 퍼터도 중요하고, 그립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퍼팅 습관’이고, 가장 중요한 거는 무서운 ‘집중력’이다.
황제 퍼팅은,
단 한차례의 퍼팅을 위하여 신체의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같다.
퍼터를 겨드랑이에 끼고 장갑을 벗으며 그린에 가까이 걸어오면서…
눈, 코, 귀로 그린 주변의 전체 흐름을 꼼꼼이 분석하고 살피며 컴퓨터에 입력시킨다.
어디가 높고 낮은지, 잔디결이나 바람은 어떤지, 수맥(?)은 어디 숨어 있는지…
그린 위에서도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촉으로 지면의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느낀다.
스파이크 자국이 많은 홀 주변을 더욱 주의 깊게 관찰하며,
입력된 자료를 종합하여 공략방향을 결정한다.
중간 지점을 선정한다…거기에 맞춰 스탠스를 신중히 선다.
먹이가 스스로 오금이 저려 아예 도망도 못 가게, 한번 더 레이져 안광을 쏜다.
주변의 갤러리들이 개미떼로 보이면서, 하얀 안개 같은 게 사방에 퍼진다….
공이 가는 길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개미 소리도 안 들린다.
먹이가 뚜렷이 클로즈업되며 다가온다. 바로 코 앞으로…
곧 먹이가 흰 눈 위에 새빨간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이다.
먹이의 할딱거리는 숨소리를 즐기면서,
콩닥거리는 가녀린 심장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심장을 뚫는 살 소리가 왼쪽 귀로 들린다…
‘이거, 좀 긴데…’ 적당히 붙여서 투 퍼팅이나 하지, 뭐…
내가 프로도 아니면서 반대편이나 홀까지 가서 보기도 좀 그렇고…귀찮네.
언니야, 어디가 높아? 약간 오르막이지?
아니, 이 쪽이 좀 더 높은 거 같은데?…
에이, 걍 똑바로 치자. 들어가면 좋고, 아님 말고…
이런 우리네 퍼팅들과는 차원이 틀리다.
황제의 퍼팅은 ‘이 한 순간에 모든 걸 걸고, 바치는 것’이다.
숨막히게 처절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퍼팅이 끝나면 당장 그 자리에서 털썩! 하고
주저 앉을 것 같다. 이런 절박함에서 그런 명장면과 걸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걸음마와 골프를 같이 시작한 타이거의 300 야드 티샷이나,
그린 위에서 멋지게 백 스핀으로 붙이는 그림들은 우리에겐 꿈일지 몰라도,
어떻게 이런 황제퍼팅을 한번 카피해볼 수는 없을까?
스트레스 풀려고 나와서, 피곤하게 18홀 내내 집중할 수는 없다.
하지만 ‘꼭 넣어야 할 퍼팅’을 하는 순간만은 우리도 황제처럼 무섭게 집중해 보자.
황사에 자꾸 감기는 쳐진 눈을 비벼서라도 번뜩이는 안광도 몇 번 쏘아보고,
푸른 그린이 ‘눈밭’처럼 하얗게,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이며 ‘줌-아웃’ 되고
홀은 ‘줌-인’이 되도록…
그러다가 정작 뒷 땅이나 치면.......
‘내시 퍼팅’이라고 친구들이 놀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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