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한님께서 메일을 주셨어요.
내용을 먼저 보시고 말씀 나누시지요.
클럽 잡은지 10년이 되었고 아직 잘해야 80대 중반, 보통 90대를 칩니다.
그런데, 무아지경님 칼럼을 열심히 읽고 머리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딱 한 번 연습장에서 실습해보고 필드에 나갔는데... 81타 (라베)를 쳤습니다.
특히 도움을 받은 부분은
스윙 형태에서 '들었다 내려치는 스윙' 과 '꼬았다 풀어주는 스윙' 을
명쾌히 설명해 주신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백스윙시
상체 코일링, 오른발을 축으로 하는 중심이동을 거의 못해주고 있었더라구요.
(물론 저는 잘하고 있었다고 굳게 믿었지만.)
백스윙을 들었다 내려치는 스윙 형태로 하면서
나머지는 모두 여기저기서 들은 꼬았다 풀어주는 동작을 만들려고 백날 노력해 보니,
힘만 들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전에 소위 들었다 내려치는 스윙을 할 때는,
1. 볼이 발보다 위에 있는 경우 또는
2. 볼이 발보다 아래 있는 경우에 오히려 큰 어려움 없이 볼을 쳤었거든요.
(실전에서 피흘리며 배운 노하우로 ㅋㅋㅋ)
3. 페어웨이 벙커샷도 그렇구요.
근데, 지난 번 필드에 나갔을 때, 다른 모든 스윙은 훨씬 좋은데,
위 세가지 경우가 전보다 쉽지 않다는걸 발견했습니다.
특히나 페어웨이 벙커샷은 3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여지없이 뒤땅을 쳤거든요
(전에는 페어웨이라 생각하고 볼부터 컨택한다 하고 치면 그냥 맞았었는데...)
보통의 경우에는 '꼬았다 풀어주는 스윙' 을 하고,
라이가 좋지 않을 때는 '들었다 내려치는 스윙' 을 해야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스윙은 하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도 될까요?
제 칼럼을 통해 라이프베스트까지 이르셨다니
일단은 복잡한 생각 다 지우고 저도 한껏 기분 좀 내야겠어요.
이걸 구실 삼아 꼬치장삼겹을 2인분 얻어 먹을 수 있을거 같기도 하고... 흐흐
네. 맞습니다.
서로 다른 패턴이 섞이면 아무 때라도 형편 없는 샷이 나올 수 있으니
백스윙 패턴과 다운-팔로우스윙 패턴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들어올리는 백스윙이었으면 다운스윙도 내려치는 동작이 주를 이뤄야 하고
코일링하는 백스윙이었으면 다운스윙도 언코일링 동작이 주를 이뤄야 하는거죠.
이 내용은 이미 단단하게 유념하고 계신듯 하니, 질문하신 내용으로 가시죠.
1. 자꾸 봐야 정이 든다
예전 스윙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상황을 3 가지 지목하셨지만...
작정하고 추려내자면,
<들어올렸다가 내려치는 패턴>이 더 편안한 상황은
3 가지가 아니라 어쩌면 수십 가지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태는
백스윙 다운스윙을 <꼬았다가 풀어주는 패턴>으로 일치시키는 초기과정이기 때문에,
아직은 다양한 라이에서 모두 자연스럽게 느끼실 정도로 몸에 익숙하지 않을거거든요.
그래서...연습장 매트와 다른 상황에 처할 때마다 조금 낯설게 느끼실 뿐이니
연습했던 상황과 다르다고 해서 스윙 자체를 바꾸는 건 권하고 싶지 않네요.
아직은 실제 필드에서의 경험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여기서 스윙을 구분하여...
연습장 매트와 비슷한 라이에서는 <꼬았다 풀어주는 스윙>으로
변형된 라이에서는 <들었다 내려치는 스윙>으로 샷을 하게 되면,
그만큼 <꼬았다 풀어주는 스윙>과 친해질 기회를 잃어버릴 뿐입니다.
사람 사이도 자꾸 봐야 정이 들잖아요.
스킨쉽이 오가고 산전수전을 함께 겪을수록 정이 더욱 깊게 드는 것처럼
스윙에서도 새로운 동작과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자꾸 가지셔야합니다.
그래서 제가 현시점에서 권하고 싶은 것은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전부 꼬았다 풀어주자...는 마음을 가지시라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 시도하시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지금 처한 상황이 메인스윙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또는 스윙요소 중 어떤 부분을 조금 조정해야 할 지에 대해 분명하게 구별하시게 될겁니다.
중급자 시절에 저는
3번우드와 친해지기 위해서 파5홀의 모든 세컨샷을 3번우드로 했습니다.
깊은 러프에 공이 잠겨있을 때도
턱 높은 벙커에 빠진 공을 쳐낼 때도
언덕 꼭대기 나무 옆 수풀에서 아래로 레이업 할 때도
심지어는 벙커에 에그플라이로 박혀 있는 공을 꺼낼 때도 저는 3번우드만 쳤습니다.
찍어쳐보기도 하고 타핑성으로 쳐보기도 하고 아무튼 별 짓을 다했었어요.
물론...그런 시도를 했던 모든 라운드가 내기판이었죠.
그러다가 동반자로부터 욕심부리지 말라고 충고를 들었던 적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으로부터는 또라이 아니냐고 뒷담화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상관 없었죠. 저는 계속 저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게 피드백이 쌓이고 나니
3번우드샷에 대해 내가 어떤 경지에 올랐다는 느낌이 들면서
나름으로 몇 가지 기술샷도 칠 수 있게 되었어요.
예를 들자면... 그 당시 저는 필요할 경우에
캐리 250 야드를 날아가서 스핀 먹고 곧 서는 3번우드샷을 칠 수 있었습니다.
태영CC 마지막 홀에서 바로 그 샷을 쳐서 핀옆에 세웠던 짜릿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 아참... 그샷을 지금 당장 보여달라고 하시면... 정녕 아니 되시옵니다. ㅎㅎ )
자...이제, 전재한님의 질문에 대한 저의 첫번째 생각을 정리할께요.
무척 익숙해질 때까지 , <꼬았다 풀어주기> 스윙을 계속 시도한다.
2. 고수의 스윙은 유기체
지금으로서는 꼬았다 풀어주는 스윙을 계속 시도하시라고 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스윙은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단단한 메인스윙 하나가 어중간한 스윙 열 개 가진 것보다 낫다.
하지만, 실전 상황은 연습장 매트가 아니잖아요. 그건 야전입니다.
메인스윙 하나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드로우를 조금만 걸어 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걸 못해서 레이업을 꼭 해야만 한다면.. 얼마나 속 상하는 일이겠어요.
우리가 필미켈슨도 아니고... 이건 거의 무조건 한 타 까먹고 간다는 얘기잖아요.
트러블에 처할 때마다 보기를 인정하겠다는 초급자에게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무조건 레이업>을 권할 수도 있지만
하나라도 보기를 피해야 하는 중상급자라면 다르게 접근해야죠.
레이업이냐 또는 직접공략이냐가 선택의 영역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코스에 질질 끌려다니는 골프,
트러블이 조금만 가미되면 그저 도망다니는 골프,
장애물만 눈에 띄면 주눅이 들어서 설설 기는 골프...
설마 평생을 이런 골프만 하시겠다는건 아니시죠 ?
제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는 몰라도 ^^
저는 그런 골프 안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눈곱만큼도...
그래서...
아까는 <꼬았다 풀어주는 스윙>이 몸에 들어올 때까지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항상 같은 스윙을 시도하며 그 결과를 피드백시키시라 권했지만,
그게 어느 정도 몸에 들어온 이후에는
점점 필드상황에 맞도록 스윙의 요소를 조정해보시길 권합니다.
코킹을 일찍 넣어보기도 하고... 더 낮게 끌며 원을 크게 그려보기도 하고...
끊어쳐보기도 하고... 눌러치며 낮은 피니쉬로 가보기도 하고... 등등
아무리 꼬았다 풀어주는 스윙을 메인샷으로 한다고 해도
러프에 깊이 묻힌 공을 빼내거나 에그플라이로 벙커에 박힌 공을 빼내는 데는
헤드의 원운동 궤적이 호빵보다 계란 모양을 그리는게 좋을테니까요.
교과서 스윙 하나만 달랑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다양한 상황에 맞게 스윙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는 말씀인거죠.
님께서 땀 흘려 연습하시는 메인스윙...
그걸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티박스 뿐임을 잊지 마세요.
중급자 수준에서는
팔동작 몸통동작 허리동작 등등의 모든 스윙요소를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상수화 시키려 노력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서 상급자 수준으로 또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각 요소의 변화가 스윙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명히 알아내기 위해
스윙요소들을 다시 변수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님께 드리고 싶은 두번째 말씀은 이렇게 되겠습니다.
스윙 패턴이 잡힌 후에는 스윙이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
3. 내가 잘해서...
제 칼럼을 읽은 덕분에 라이프베스트까지 내셨다는 말씀... 참 감사합니다. ^^
하지만 거래는 공정해야겠죠 ?
아무리 생각해봐도 님께서는 값을 너무 후하게 쳐주셨는데... 흠...
그냥 들고 튈까...하다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꾹 참았습니다. ㅎㅎ
양용은프로가 스윙이 더 좋아서 타이거를 이겼나요?
아니죠.
양용은프로의 스윙이 한국에 있을 때와 완전히 달라지긴 했습니다만
스윙의 품질 면에서 보자면 아직 타이거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해야겠습니다.
수 많은 경기의 결과로...양용은프로는 랭킹110위이고 타이거는 1위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양용은프로의 승리에 환호하지만,
스포츠 역사상 이변 3위라는 역전승보다 더욱 경이로운 사실은
타이거우즈가 무려 15번째만에야 메이저 역전승을 허락했다는 거죠.
객관적인 전력에서 둘의 차이는 이렇게 큽니다.
그런 강자를 양용은프로는 과연 어떻게 물리쳤을까요?
양용은 프로는 가속구간에서 약간 아웃인으로 짤라들어오다가
풀샷을 방지하기 위해 임팩트와 동시에 턴오버를 순간적으로 제한하는데
이 스윙으로 드로우를 만들려고 하면 오비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드로우를 치려면 어쩔 수 없이 종류가 다른 스윙을 해야하죠.
그 약점을 본인만 알까요?
아뇨... 타이거도 당연히 압니다. 단 한번만 봐도 장단점이 줄줄 나오겠죠.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양용은프로는 타이거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양용은프로는
꼬리를 무는 그런 부정적이고 복잡한 잡념에 구애받지 않았어요.
풀샷 또는 페이드가 나오는 스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의 경로에 나무가 버티고 서있다고 해서 오그라들지 않았죠.
나무를 향해 쳤다가 페이드가 아니라 풀샷이 나오면 재앙이 될 상황에서조차
양용은프로는 그냥 쳤습니다. 겁도 없이 그냥 쳤어요.
내가 저 나무를 넘길 수 있다...라고 믿고요.
왼쪽 도그렉홀에서 벙커들이 줄지어 서있고
조금만 당겨져도 숲으로 갈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용은프로는 자신의 스윙을 믿고 그대로 왼쪽 숲 가장자리를 향해 쳤습니다.
그 공은 기가막히게 벙커턱을 맞고 튀어서 페어웨이로 가더군요.
코스의 장애물들이 굳센 믿음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홀까지 이런 식이었어요.
양용은프로는 스스로를 그리고 자기 스윙을 굳게 믿었습니다.
아무때라도 실수 한 방은
평생 다시 올지 알 수 없을 우승기회를 물 건너가게 해서
조심성 없었다고, 무모한 샷이었다고 온갖 뒷소리가 난무하게 할 것이었지만
양용은프로는 난 그런거 모른다는 듯이 너무나 뻔뻔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안되면 말고> 식이랄까요.
메이저가 별거냐...라는 터무니 없는 눈빛... 그것은
지금까지 타이거를 상대했던 모든 경쟁자들이 갖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2006년 HSBC챔피언쉽부터 그의 잡초 승부사기질을 눈여겨 봤던걸까요...
타이거우즈가 양용은의 배째라 마인드를 경계하는게 처음부터 느껴지더군요.
2번홀의 유력한 버디퍼팅을 실패하고서 타이거는 그만 풀썩 주저앉았었는데
그것은 퍼팅에 늘 중압감을 느끼던 미셀위가 자주 보여주던 모습이었지
반은 아쉬움, 반은 장난기를 섞던 타이거의 예전 몸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은 뭔가 다르다. 아니 달라질거 같다...는 예감이 들더군요.
자.... 말씀이 길었네요.
전재한님께서는 제 칼럼 덕분에 라이프베스트를 쳤다고 하셨지만
액면 그대로 말씀드려서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 칼럼이 어떤 계기가 되었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전재한님께서 자신의 스윙을 믿었기에 가능했던거라는 말씀입니다.
공은 겨냥하는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님께서 진정으로 마음쓰고 있는 곳으로 갑니다.
내가 이제는 꼬았다 풀어주는 스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꼬았다 풀어주기만 하면 공은 제대로 맞아서 목표점으로 갈 거라는 확신,
바로 그것들이 님의 라이프베스트를 만들어 줬다는겁니다.
앤서니김이 우승했을 때 타이거는 전화 걸어서 이렇게 말했다더군요.
마치... 한수 가르치듯이 말이죠.
' 잘했어. 바로 그렇게 하는거야. '
하지만 자신을 꺽은 양용은프로에게는 이렇게 평했다고 하네요.
마치... 자신의 진정한 적수였다고 인정하듯이 말입니다.
' 완벽한 승리였다. '
타이거가 앤서니김에 대해서는 아직 설 익었다고 느꼈지만
양용은에게는 만만치 않게 농익었다고 느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골프의 정수를 드러내 주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그가 거둔 수많은 승리의 비법을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양용은프로가 보여줬던 믿음과 자신감의 라운드와
그리고, 전재한님이 맛 보셨던, 자신의 스윙에 대한 믿음의 라운드는
타이거가 생각하는 골프의 정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라이프베스트는 제 칼럼 덕분이 아니라,
님께서 실전 스윙의 마인드를 잘 유지하신 결과라는 말씀이죠. ^^
능력을 키워주는건 연습이지만,
그 능력을 제대로 쓰게 해주는 것은 믿음, 자신감이니까요.
다 털어놓고나니 꼬치장삼겹 2인분이 훨훨 날라가는게 보이지만
그래도 머... 감수해야죠. 거래는 공정해야 하니까 ㅋㅋ
하지만 아직 1인분은 유효한거죠 ?
그것 마저 없던 걸로 하시면 정녕 아니 되시옵니다.
계기가 되었던 건 맞잖아요. ㅎㅎ
ps. 좋은 스윙이 좋은 스코어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줄 뿐이죠.
스윙에 대해 칼럼을 쓸 때마다 이게 계속 마음에 걸렸었어요.
훌륭한 골퍼는 목표에 주목하지
동작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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