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골프 왜 쳐?
응? 뭣 때문에 골프를 치느냐구? 글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처음에 골프를 왜 시작했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더구나 당신처럼 운동이라면 펄쩍 뛰...지 않고 벌러덩 드러눕는 사람이? 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런가? 글쎄 뭔 이유가 있었을 텐데...맞다! 비즈니스.. 그거 하려면 골프를 쳐야 한다고 그래서 시작했지, 뭐.
비즈니스를 하려면 골프를 쳐야 한다고? 그거, 반대, 거꾸로 아냐? 골프를 치려면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월급만 받아갖구설랑은 골프 못 치잖아?
그런가?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럼 내가 골프를 하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하는 건가,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골프를 하는 건가? 헷갈리네? 음... 맞다, 사실은 비즈니스 때문이 아니었어. 친구 놈들, 거래처 놈들 때문이었어... 지들끼리 모여서 골프 얘기만 4시간 반을 하다가, 술집에서 젓가락 들고 빈 스윙하는 게 말야, 도대체, 나 혼자 왕따더라구. 이넘들이 내가 화장실을 댕겨와도 없어졌는지도 모르더라구. 아, 그래서 그거 서러워서 시작했지 뭐.
그것도 말이 안 돼. 당신 TV에서 왕따시키는 애들 동영상 나오면 맨날 뭐라고 했어? 왕따 당하는 놈보다 시키는 놈들이 더 문제라고 흥분하던 사람이잖아. 친구들이 당신 골프 안친다고 왕따시키면 그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왜 그런 짓에 동참을 해?
음, 그것도 그렇네... 그럼 내가 왜 골프를 치더라... 그러니까.. 맞다, 건강! 그렇지... 건강 때문에 골프를 치는 거지 뭐. 이 나이에 뭐 특별히 할 운동도 없잖아? 내가 이 나이에 조기축구를 나갈 수도 없잖아, 특히 내가 무슨 조기야? 나는 비린내 나는 음식은 질색이라구.
점점 들이대는 이유가 더 말이 안 되네. 당신 골프 치는 사람들 중에 배 들어가고 몸짱인 사람들 본 적 있어? 골프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는 사람 봤어? 맨날 허리 아프니, 어깨 쑤시니, 옆구리가 결리니, 갈비뼈가 나갔느니...심지어 여자들은 피부가 자외선 때문에 거북이 등껍질이라고 투덜대지 않나.. 나 아는 양반은 골프카트에서 떨어져서 돌아가시기도 했다더라. 건강은 무슨 건강? 건강을 생각하면 조깅을 하고, 달리기를 해서 살부터 빼야 하는 거 아냐? 특히 농구공은 몰라도 축구공은 충분히 들어가 있는 그 거대한 배와 육중한 몸무게를 생각해봐.
그렇구만.... 그럼 도대체 내가 왜 골프를 치더라... 그래, 사교! 사람들 사귀고 어울리려면 골프가 최고라구. 맑은 공기 마시며 소풍간 기분으로 놀다가, 마음 터놓고 빨가벗고 목욕까지 해봐. 그리고 그 후에 함께 마시는 맥주 한잔! 캬... 이거 사교에는 아주 왓따라구. 18년 사귄 친구보다 18홀 함께 돈 사람이 더 친해진다는 말 몰라?
허이구, 옆차기를 하시네. 그래서 당신이 골프 치고 와서 친해진 사람이 어디 있어? 맨날 필드만 나갔다 오면, 어느노무시키가 알을 깠느니, 타수를 속였느니, 돈 따고 개평도 안줬다느니, 퍼팅할 때 15센티씩 앞에다가 동전을 놓느니 하면서 비분강개나 하면서 왔지, 친해지기는 개뿔... 언제 한번이라도, 그분과는 꼭 다시 치면서 많이 배우고 싶다, 골프 덕분에 참 좋은 사람 만났다고 한 적이 있어?
아, 그거야.... 원캉 내 주변에 있는 놈들이 사기꾼에다가 협잡에.... 뭐 하여튼 제대로 골프를 배우지 못한 고인돌 수준의 원시인들 내지는 양아치 골퍼들이기 때문에 그런 거지... 애들이 도대체, 골프의 심오한.... 맞다!!! 맞어, 나는 사실 도를 닦는 심정으로 골프를 치는 거야. 골프가 곧 인생이라는 거, 당신 알어? 빵카에 빠질 수도 있고, 해저드에 들어갈 수도 있으나, 꿋꿋하게 이겨내고 그린에 올라와서 최선을 다한 퍼팅으로 마무리하는... 맞어, 골프는 바로 인생이야, 그런 모습을 보고 도를 깨치는 심정으로 나는 골프를 치는 거야. 공자님도 그랬잖아? 조문도 석사가의 라구...
석사같은 소리를 해요... 그 석이라는 글자는 아마 돌 석자인가부지? 뭔놈의 도를 깨우치려고 드라이버는 비공인에다가 골프공도 비공인으로 무조건 거리만 나면 된다고 카드 찌익 긁고 사고, 마누라한테 카드 명세서 들킬까봐 회사로 수령지나 옮기고, 라운드 나가면 30만원 깨진 주제에 집에 와서는 돈 땄다고 뻥치고, 괜히 공부 잘하는 아들 불러다가, 성적이 백돌이라고 군밤이나 주고, 장인어른 칠순잔치에도 해외 바이어 왔다고 썰 풀어놓고 골프장 다녀와서 얼굴이 벌개져서 나타나고... 뭔 놈의 도를 그렇게 깨우친댜? 그렇게 해서 도가 깨우쳐지면, 요강이 고려청자라고 국립박물관 가겠다.
거 왜.... 몇 년도 더 된 일을 갖고... 장인어른 칠순 잔치는 그래서 내가 사죄를 드리고, 팔순때 잘해드리기로 했잖아. 내가 적금도 부을 예정이라고... 그리고, 그 비공인 드라이버는 말야, 사실은 거래처 김 사장님 사드린 건데, 그 양반이 그게 안 맞는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도로 받아온 거야.
엇따대고 감히 변명질이야? 우선 우리 아부지가 팔순때까지 사신다는 보장이 어딨어? 그리고 적금은 아직도 안 부은 모양이지? 부을 예정이라고 하는 거 보니까? 게다가 그 비공인 드라이버를 뭐, 거래처를 줄라고 했다구? 우리 영감님, 다마수 속이는 수준이 그거밖에 안 돼? 그 양반 드릴라고 샀다는 드라이버가 샤프트를 S로 맞추고 그립까지 피팅을 해부러? 69세 먹은 양반이 샤프트 S 드라이버 쓰는 거 본 적 있어? 그리고 그때, 그 양반 교통사고 나서, 허리 부상이 도져 1년간 골프 끊게 생겼다고 그랬잖어. 어디 감히 나를 속이려고... 차라리 김연아 앞에서 뺑뺑이를 돌고 박태환이 앞에서 물장구를 쳐라..
어허 이사람이... 아, 왜 좋은 골프 얘기하다가 갑자기... 눈에 실핏줄 터지겠네. 우리 딴 얘기나 하자구... 요새 국제 유가는 왜 이리 뛰는 거야? 환율이 이래갖구서야 수출이 되겠어? 수출 안 되면 대기업 현금 유동성 위기 오고, 특히 정권에도 문제가 많잖아? 참, 지자체 선거가 언제였더라? 우리 동네에선 누가 나온대? 전에 그놈이 또 나오면 우리 단체로 찍지 말자구. 어, 날씨 덥다. 비라도 한 차례 와야 봄이 올 텐데 말야... 거 뭐 사과라도 좀 깎아오지? 당신은 역시 단발머리가 어울려. 염색한지는 꽤 됐나?
됐어, 아주 허우적대는구만. 불쌍해서 봐줬다. 그때 얘기는 넘어가줄게. 어쨌든 지금 내가 정말로 궁금한 건 말야, 도대체 당신은 골프를 왜 치느냐 이거야. 맨날 투덜대고 맨날 숨어서 비싼 새 채나 사고, 맨날 돈만 잃고 동반자만 열심히 씹어대면서, 그노무 골프를 왜 훗딱 때려치지 못하고, 한여름 날 아스팔트에 늘어지는 소X알처럼 질질 끌고 다니느냐 이거야. 도대체 골프 왜 치는 거야?
봐줘서 고맙네그려. 사실 당신같이 착한 사람도 없지, 우리 오래오래 손잡고 잘 살아야 할 텐데 말야, 그러니까.... 늙어서도 우리가 함께.... 맞다, 난 사실, 골프를 치는 이유가 말야, 세상의 모든 운동 중에서 오로지 골프만이,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으면서도, 늙어서도 함께 부부가 손잡고 나갈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야. 이렇게 가족적인 운동이 어디 있겠어? 생각해보라구. 당신이 나하고 야구를 하겠어, 럭비를 하겠어, 사람의 탈을 쓰고 조기 축구를 하겠어? 이 골프라는 것만이 우리가 늙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잖아? 한번 상상해보라구. 석양이 물드는 골프장을 배경으로 우리가 18홀을 마치고 손잡고 걸어가는 노년의 모습을...
이 인간이 한번 봐준다고 하니까 아예 비키니 입고 캉캉춤을 추자고 뎀벼드네? 머시라고? 가족적인 운동? 그래서 그노무 가족적인 운동 좀 같이하자니까, 나를 일부러 딴 연습장에 떨어뜨려놓고, 70년대에 쓰던 스틸샤프트에 감나무 드라이버를 던져주고 있냐? 가족적으로 놀라고, 재작년 겨울에 숫자 못 맞춰서 딸랑 하루 델구 나갔다가, 하루 왼종일 잔소리에 비아냥에 구박에.... 그것도 모자라서, 올 때에는 지 혼자 술은 바가지로 마시고 마누라 운전만 4시간 반을 시켜먹었냐? 자기는 일주일에 한 번도 모자라서 뻔질나게 필드로 나가는 주제에 내가 좀 같이 치고 싶다니까, 겨우 스크린 골프 쿠폰만 열 장 끊어주는 게, 가족적이냐?
어허, 이 사람이... 봐준다더니... 아니 왜 멀쩡한 휴일날 아침에 좋은 골프 얘기를 시작해놓고 이렇게... 흥분을 하고 그래... 오늘 왜 이러는 거야, 우리 사모님이.... 도대체 문제가 뭐야? 내가 솔찍하게 털어놓으면 다 해결을 해볼 테니까, 우리 그냥 커피나 한 잔 하면서 흥분을 좀 가라앉히자구... 거 뭐, 맘에 안 드는 일이라도 있어? 왜 그래? 생각해보니 요새 당신이 맨날 한숨만 쉬고 그러는게, 뭔 일이 있는 모양이지? 얘기해봐, 내가 몸을 팔아서라도 해결해줄 테니까.
그래, 내가 요새 사실 잠도 안 오고, 누우면 가슴이 뛰고, 서면 가슴이 답답하고 앉으면 가슴이 멎는 거 같애. 아주 펄펄 뛰겠어. 이게 다....
그래, 그렇지, 말을 하라구, 말을... 도대체 뭔 일이 있어서 당신이 요새 기분이 그런 거야? 말을 해야 해결을 볼 거 아냐.
에휴, 어차피 당신이 해결을 할 수도 없는 일이야. 됐어, 우리 그냥 넘어가자구..
어허, 이 사람이 남편을 뭘로 보고... 말을 하란 말이야, 내가 해결을 해줄 테니까... 부부 간에 못할 말이 어딨어.
사실은 말야... 내가 지금 몇 주째, 가슴이 답답하고 그런 이유가 말야...
그래, 말을 해봐. 왜 그러는 거야?
골프스카이에 가면, 오입싱글이라는 놈이 칼럼을 쓰는데, 그놈이 요새 바쁜지 몇 주째 칼럼을 안 쓰고 있어.... 그거 보고 싶어서, 내가 안정이 안 돼...그거 당신 빽으로 그놈 좀 잡아다가 하루종일 골프칼럼만 쓰게 할 수 없을까? 듣자하니 인물도 배용준, 장동건이 뺨친다드라.
윽, 당신도 그 칼럼 보는구나, 역시 당신은 인텔리겐챠에다가 럭셔리하면서도 서민적인 품위를 잃지 않는 위대한 마누라 골퍼구만. 우리 골프스카이 편집진에다가 그 인간, 칼럼 좀 매일 연재하게 해달라고 전화나 땡겨볼까?
* 이렇게 해서, 저는 주어진 칼럼의 숙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위기의 부부를 평화의 늪으로 끌어들여 세계 평화를 앞당겼습니다. 원래 올해의 목표는 노벨골프칼럼문학상이었으나, 잘만 하면, 노벨 평화상까지 2관왕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팬 여러분, 미리 고맙습니다.(아... 이번 칼럼의 끝부분을 쓰면서 얼마나 손발이 오그라들었는지....뭐, 사실은 사실이니까.....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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