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프로에 데뷔했고
한동안 꽤나 명성을 날리던 프로가 거나하게 술이 들어가자
이제는 더 이상 골프를 못하겠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며 친구에게 고백을 합니다.
'왜? 한동안 잘 나가더니 왜 그만두겠다는 거야?'
'무서워!'
'!?'
'드라이버를 잡고 티 박스에 서면 손에서 식은 땀이 나고,'
1미터도 안 되는 퍼팅을 하려고 서 있으면
퍼터의 무게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져!'
더 이상은 힘이 들어서 못하겠다고 흐느낍니다.
옆자리도 다가가 실컷 울 수 있도록
한참 동안 그의 어깨를 감싸고 말이 없던 친구가
뜬금없는 질문을 합니다.
'너 혹시 고라니나 소의 눈망울을 본적 있니?'
'있어!'
진짜 착해 보이지 않냐?
'그래, 그렇지'
'어쩌면 진정으로 비겁한 자만이
고라니나 소처럼 눈망울이 선한 것 아닐까?'
'비열한 것은 죄가 될 수 있지만
겁이 많은 것은 죄가 아니잖아!'
'초식동물들은 비겁해서 오히려 눈 빛이 아름다운 건 아닐까?'
'날마다 당당한 척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충혈된 눈빛,
그 비애가 더 가슴 아프지 않니?
!?
'난 초보라서 골프를 잘 모르지만
바람을 두려워하고, 비도 두려워하고
감춰진 페어웨이를 두려워하고
경사진 그린의 잔디를 두려워할 때
'골프에 대해 슬슬 비겁해 지기 시작할 때'
그 때 골프가 비로소 시작되는 거 아냐?'
'!?'
'내 생각엔 골프가 육식동물의 힘과 용기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초식동물의 겁먹은 듯 '선한 눈망울'로 하는 운동일 것 같은데
안 그러냐?'
'그래, 니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너, 지금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골프를 그만두면
아무것도 못해!
골프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모든 일도
겁 없고 철없을 때 잘하는 것은 중요치 않아
세상이 무서운 것을 알면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진짜지
이제 니가 비로소 골프의 시작에 서 있는 거야'
.
한 참을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한 마디 합니다.
'그래 다시 시작해 볼게!'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친구의 말에 힘을 얻어서 지금까지도 좋은 성적을 내면서
투어프로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어느 프로의 이야기였습니다.
초보자들과 라운드를 해보면 '참 겁이 없다'는 걸 느낍니다.
무지해서 그렇기도 하고, 세상의 속도주의, 경쟁주의, 성과주의,
성장주의라는 병을 그대로 들고 와서 골프를 어떻게든 해보려 덤벼서도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오염된 그런 병들이 치유될 때까지 '골프는 골프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골프와 더불어 행복하세요.
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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