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식사를 끝냄과 동시에 집 나설 채비하는 아빠를 붙잡고
우리 여섯살 꼬맹이 하는말
\'아빠 오늘 연습장 가지마\'
\'어제 안갔으니 오늘 가는 날인데\'
\'안돼.. 오늘 바둑두자\'
시계를 쳐다보니 잽싸게 한판 둔다 해도 약간 애매한 시간...
데리고 가기엔 너무 춥고, 또 그동안 여러 연습장에서 애와 함께 먹었던
눈치밥이 쌀 한 가마니 분량도 넘고...
매일 하던 연습량도 작년말 부터는 반이상 줄어서 하루 빠지는 비중이 크지만
그래도 옷자락 부여잡는 아들놈 손아귀 힘보다 클까?
애 달랑 하나 두고 있으니 아빠가 친구도 되어야 하고
선생님도 되고 호랑이도 되어야 하는 분위기는 아는데 ..
그래도 쩝.. 속으로 입맛 다시며 덜푸덕 앉아버리고선
10급 약간 안되는 독학 바둑으로 학원 다닌지 두달도 넘은 녀석을
그것도 호선으로 무려 20집이나 이겨 아빠 체면을 세워놓고 나니
이녀석 다시 \'이제 뭐할까? ...음..뭐할까....아 퍼팅하자..\'
오잉 ? 이녀석이 효, 불효를 번갈아서 ?
\' 그래 한 번씩 치는거다 잉?\'
\' 알았어.. 시합하는 거다 아빠?\'
\' 쭈~타\'
매트는 녀석이 깔고 난 퍼터 두개와 볼을 얼른 챙겨 꺼내놓고선
한 10여분 오락가락 하다보니 녀석의 스트로크가 예사롭지 않다.
세살 적 지 엄마랑 파3 미니골프장 구경시켜준 이후로
노상 연습장에 따라와 난로 위에 구운 고구마며 과자도 얻어먹다가
싫증나면 아빠채 빼앗아서 휘두르다 아예 시간 배정을 받기도 하고
그래도 지자식이라고 내 딴엔 천재성이 엿보여 고민도 했었는데
이제는 컴퓨터만 붙잡고 인터넷 퍼팅게임을 찾아내 또닥거리는 건
어쩌다 한번이고 대부분은 주니버와 줌비니를 거쳐 카트라이더 등으로
게임에만 빠져있으니 아쉬운 한편에 어떤 의미로는 다행스러울수도 있겠다.
지가 좋아서 한다면야 무엇이든 내 뼈골 다 빼 줄 수 있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강원도 그 골프장.. 아그들 연습라운딩 내내 쫒아다니던 그 부모들이
지금도 쏟아붓고 있을 무엇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엄두가 또 안나는 일이라
\'공부가 그래도 확률이 높다\'라는 애비로선 어쩌면 비겁한 논리도
미리 맘 한쪽에 몇년 씩이나 땅겨 준비해 놓고선
녀석 주위에 번지던 무지개 빛 환상을 잠시 즐기기만 했던 때도 있었는데
아.. 그런데 이녀석 그동안 간간히 내 퍼터 빼앗아
마구 휘둘러대던 스트로크가 짧아지다니....
1.5미터 목표점 앞에 못 미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얘긴 목표점과 그 거리에 해당하는 힘의 세기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는 건데........
지난 두어달 지 아빠 매일 방바닥 비벼대는 걸 보고 있었단 말인가?
하긴 옆에서 책읽고 있어도 안 볼 재간은 없었겠지만서도...
아예 내 퍼팅연습을 포기하고 주저앉아서 그녀석 퍼팅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거꾸로 세워둔 가운데 롱티는 +10점, 약 10센티 간격으로 좌우 티는 - 5점
\'100점 따면 원하는 거 사주마\'
\'열꼬치 한개\'
\'쭈~아\'
에효.. 배포라곤 꼭 지애비 닮아서....
틱
.
틱.
..
.
티틱
\'야 치기전에 공 한번 봐야잔여..\'
\'알았어\' 하고 힐끗 공 쳐다보는 그 앙증맞은 곁눈질을 맘속으로만 깨물어 주다보니
다섯개에 한개 꼴로 가운데 티를 맞춰대는게 또 신기하다.
좀 더 어렵게 간격을 좁혀줘도 따놓은 점수 몇번 까먹기는 했지만 기어이 100점...
...음... 애비보다 낫다... 마이 낫다... ..훨 ~~ 낫다..
문득 스치는 두가지 생각..
목표뒤에 앉으면 그녀석 퍼터 페이스의 열리고 닫힘을
수직방향에서 볼 수 있게 되는데 그 열리고 닫힘에 따라
볼이 정확히 그 방향으로 굴러온다.
그러면 그린에서 스트로크는 고사하고
내 퍼터정렬만이라도 과연 믿을만한 수준인가? Absolutely No..
아닌 것 같다.
볼에다 매직펜으로 줄은 매우 찐하게 그어 놓았어도 아닌 것 같다...
레이저 퍼터 ??? 힝.. 그건 더 아니고...
또 한가지는 초보골퍼의 가끔씩 놀랄만한 퍼팅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애녀석에게 무슨 부담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
열꼬치야 땡깡한번 더 부리면 지엄마라도 사줄 것인데
한거 없이 40도 홀짝넘은 애비 것보다
여섯살백이 순진하고 무심한 퍼팅이 되려 더 낫다고 하지 못할 게 없지않은가?
그려. 맴이라고라.... 또 그놈의 맴이라고라....
그러나 저러나
식구수 대로 네개의 열꼬치에
마눌분부 받자온 맥주 두병 싸들고 아파트로 올라가면서도
아들녀석과 노는 시간 더 많이 보낼 궁리하는 것보다는
퍼터 페이스 비틀어지는 모습이 머리속에 오락가락 하고 있으니
친아빠가 과연 맞긴 허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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