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안성윈체스트cc에서 지인들과 라운딩을 가졌습니다.
다들 비슷한 실력들(85~90)로 서로 경쟁심리는 강했지만,
친형제처럼 허물없는 사이들이라 큰 부담없이 라운딩을 시작했습니다.
전반은 '42타'로 평소 컨디션 좋을 때의 스코어.
후반 들어 10번홀 '보기'로 출발하더니,
11번홀부터 '파' 행진이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3연속 '파'를 할 때만 해도 돈 잃었다는 생각에 입이 삐쭉 나왔던 동반자들은
제가 4연속 '파'(일명 '아우디')를 하자
'어허, 그러다 오늘 싱글 하겠네'라고 한마디씩 했지만,
이때까지도 표정들은 '설마'하는 분위기였지요.
15번홀도 '파'를 잡아 5연속 '파'(일명 '오륜기')가 되자
그때부터 다들 말이 없이 조용해지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남은 3홀에서 모두 '파'를 하면 70대 스코어가 되는데,
그때의 저의 컨디션으로 보아 충분히 달성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16번홀 마저 '파'를 잡아 6연속 '파'를 하고 나니
이제는 스킨은 안중에도 없고 저의 기록 달성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문제의 17번홀. 티샷이 잘 맞아 페어에이 중앙으로 갔습니다.
세컨샷 지점으로 가서 보니 공이 디봇자국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안타깝더군요. 이 중요한 순간에..
동반자들은 구제를 인정해 줄테니 드롭하고 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유혹의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타이거우즈도 벙커 발자국에 빠진 볼은 구제를 해 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디봇자국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고 수선하지 않아 생긴 것이니,
내 실력과는 무관한 것인데 그것때문에 내가 불이익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전까지 저는 나름대로 원칙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멀리건은 절대 없고, 일파만파도 없고, ok받은 공도 무조건 홀인 했습니다.
그런데도, 개인적인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켜온 스코어에 오점을 남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그대로 치겠다고 하였습니다.
찍어친 볼이 약간 감겨 그린 왼쪽 러프에 떨어지고 그 홀에서는 '보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홀을 '파'로 마무리하여 최종 스코어 80을 기록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드롭을 하지 않고 그대로 친 것은 정말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드롭을 했을 경우, 남은 거리가 110m 정도였으므로
아마 그 홀도 무난히 '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79타를 기록했다 한들 시비의 여지는 영원히 남았을 것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디봇자국의 볼을 그대로 쳤을 때
생크가 나서 OB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면
스코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 아니냐고 충분히 문제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상황에서도 최소한 '보기'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면서
아무런 시비의 여지가 없는 80타를 달성하였습니다.
악법도 개정되기 전까지는 지켜야 할 엄연한 법입니다.
룰을 지키지 않고 달성한 기록은 의미가 없습니다.
설사 다른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른다 하더라도 나 자신은 압니다.
먹칠된 기록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랑'은 할 수 있을지언정,
스스로에게 느끼는 대견함과 '뿌듯함'은 결코 맛볼 수 없습니다.
이상, 분에 넘치는 스코어에 흥분한 하수가 몇 마디 주절거려 보았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벙커 발자국과 디봇자국에 들어간 볼은
인공장애물에 준하여 무벌타드롭으로 구제해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속히 PGA 룰이 개정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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